갑판 위를 달렸다.
선미에서 선수까지 삼백미터가 넘는 아득한 그 거리를 달리고 있노라면, 강철로 된 바닥이 몸을 밀어올리는 듯한 즐거움이 마음을 적신다.
갑판을 쓸고 가는 바닷바람에 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들이 밤 바다의 공기를 채운다.
세 평 남짓한 선실은 정겹다.
낡은 책상에 앉아 작은 등을 켜고, 창문으로 스며드는 바닷바람의 짠내를 다시 마주한다.
선실이 오렌지색으로 물들자 그림자가 손을 흔든다. 그 인사가 정겹다.
바람 사이로 파도가 뱃전에 부서지는 소리가 자그마니 들려온다.
밤 바다의 고독.
배에 실린 물건들이면 백 가지의 다른 인생을 채울 수 있으리라는 상상, 실로 그 속에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, 그 모든 진귀한 것들의 운명이 나의 선의와 책임감에 맡겨져 있다는 경이.
가진 것이 무엇인지도, 가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지 못하기에, 그 호젓함에 몸을 맡긴다.
밤 바다의 평온.
갓 스물을 넘겨, 사랑해본 적도, 사랑하는 이도, 사랑해 주는 이도 없지만,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상상하고 기대해보기도 한다.
공책을 꺼내어, ‘사랑’이라고 써본다. ‘Love’라고도 써본다. ‘愛’라고도 써본다. 그 유치함에 웃다가 부끄러워 지우개로 지워도 본다.
사랑은 강철로 된 갑판을 뛰는 일처럼, 선실에서 짠 바닷바람에 미각과 후각과 청각을 맡기는 일처럼, 나의 것이 아닌 것들이 자신에게 잔뜩 맡겨진 바로 이 경이로운 일처럼, 그저 고독하고 평온할 것이라는 마음으로, 그는 연필로 ‘사랑’을 쓰고, 또 지워가며, 아직 찾아오지 않았으나 어쩌면 어느 미래에 이미 찾아왔을 그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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